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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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눈팅과눈팅사이 댓글 3건 조회 1,530회 작성일 19-10-30 16:46본문
이방도 ...
산천은 의구한데 시끌벅적한 인걸의 흔적은 찾기 힘드네
점점 황사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럴때는
물어 뜯고, 치고 박고 난리 치는 글이 최곤데
미즈검열이언해 매서운 눈초리가 무서워서리...
그나저나....
처음에는 얌전한 학자로만 알았는데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네.
그러지 않고서야
한사람 때문에 대빵을 위시한 여러명의 구캐으언들이
대갈빡까지 밀어 버리지를 않나
나라의 앞날이 등불 앞에 촛불인지 안개속인지도 모를때도
기레기들은 단지 한사람만을 까기 위하여
똥 먹던 힘까지 전력 투구를 하지를 않나
수 많은 부서중의 하나인 일개 부서의 짱인데도 불구하고
짤라 냈다고 신나서 표창장에 상금까지 주지를 않나
도대체 그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기에,
얼마나 그에게 겁을 먹었기에
단지 한사람 때문에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닌듯이
생난리 질알을 해대는건가...
참 궁금하다.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댓글목록
길재 :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여말 3은중 한 인간
길재. 정몽주. 삼봉 정도전 모두가 목은 이색의 제자들이였다
길재는 야인으로 살아갔고 몽주 흉아는 성계 흉아에게
대굴빡 빳빳히 들다가 성계 흉아 다섯째 아들 방원이에게
선죽교에서 철퇴로 대굴빡을 맞고 밥숟가락을 놓는다
방원의 하여가와 몽주의 단심가가 이 시대를 대표한다
유일하게 배를 갈아 탄 삼봉 정도전 조선 창업의 개국공신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푸른 기와집. 경복궁. 한양의 4대문이 존재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길재의 고려를 대표하는 충절의 시조를 돌이켜 보자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당시는 길재 흉아의 시조가
훈민정음 창제 이전이라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에
해석은 개나 소나 누구나 마음대로 해석이 가능 했다
눈사이님 고맙습니다
야호~~~~
글 올리자마자 추가 하나도 없는데도 박스에 들어 갔다.
신난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