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황5제는 한민족의 후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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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즈넷내사랑 댓글 0건 조회 1,356회 작성일 19-02-28 11:34본문
1. 태호복희씨
배달국 5대 태우의 한웅의 막내아들로 아주 지혜로운 선인이었다. 복희씨는 아버지의 명을 받아 지나족에게 신시문명을 전파해주어 오늘날 중국이라 불려지는 문화의 물꼬를 터준 분이며, 그런 면에서 지나인들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다. 그래서 복희씨를 삼황오제의 시조로 모신다.
복희팔괘를 만들고 배달국의 한역에서 훗날 주역의 모체가 된 희역으로 발전시켰으며 유교사상의 시조가 되었다. 복희씨 이후 삼황오제 시대를 거치면서 욕심 많은 지나인들은 급성장하여 힘을 키워갔다.
후일 단군조선의 폐관 이후에 동이족과 한족의 세력이 역전되어, 한민족의 문화가 거꾸로 중국에서 영향입은 중국문화의 아류로 치부되어 오늘에 이른다.
1989년 중국 상해에서 발간된 "역대 제왕록"에서도 복희씨가 풍씨이며 "고대 동이족"이라고 기록했다.
2. 신농씨의 족보
8대 안부련 한웅 말기에 소전이란 이가 있었는데, 배달국 고시씨의 방계 자손이다. 그는 강수 지역에서 병사들을 감독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훗날 중국 삼황오제중 하나이며 의약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신농이었다.
신농씨의 애당초 직업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다. 신농씨는 복희씨의 뒤를 이은 여와에게서 나라를 물려받아 임금이 되었다. 그후 열산으로 나라를 옮기고, 배달국의 본을 따서 백성들이 물자를 교역하는 시장을 열어 생활을 편리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농사와 한의학의 원조가 되었다. 신농씨의 뒤를 유망이 이어 받았다.
3. 황제헌원의 족보
8대 안부련 한웅때 사람인 소전에게는 신농씨외에 또 다른 아들 공손이 있었다. 그는 육축을 담당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한다하여 헌구라는 곳으로 유배를 갔으며, 헌원은 그의 후손이다.
곧 삼황오제중 하나이며 중국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황제 헌원과 그의 무리는 헌구지역으로 유배된 소전-공손의 후손이다.
중국 역사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사마천의 <사기>에는 중국대륙 여기저기에 세력을 갖추기 시작한 여러 제후들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신농씨와 헌원이 싸움을 벌인 결과 세 번의 싸움 끝에 황제헌원이 이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것은 소전으로부터 약 500년 후 즉 고시씨-소전-신농의 후손과 고시씨-소전-공손의 후손인 황제헌원이 싸워 헌원이 이긴 것으로, 배달국 시대 동이족의 어떤 할아버지(소전)의 손자들이 중국 땅에서 나라를 걸고 집안싸움을 한 것을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현대의 중국인들은 기원전 2천 수 백년 전에 황하유역에 갑자기 삼황오제가 나타나서 중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금 대만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족보는 밝히지 않고 다만 "황제헌원은 참으로 중국 민족의 시조이다."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초나라와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에서도 "황제는 백민에서 났고 동이족에 손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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