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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자 댓글 7건 조회 1,699회 작성일 23-11-0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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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겨울 코로나가 터지고 국경이 닫혀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방랑벽이 있는 나는 방 구석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해 4월 변산에 가서 해변가에 텐트를 박고 장박에 들어갔다.

처음 1주일이 힘들어서 그렇지 한 달 지내다 보니 이골이 나고

나는 그렇게 넉 달을 그곳에서 보냈다.

 

내가 처음 텐트를 펼칠 때

바로 옆 텐트에는 칠순을 훌쩍 넘기신 사진작가님이 계셨는데

계절마다 자리를 바꿔 전국을 유랑하며 사진을 찍으시는 분이었다.

아마도 그 작가님은 오뉴월이면 변산 마실길 절벽에 장관으로 펼쳐지는

데이지꽃의 개화를 기다리고 계시는 듯했다.

 

텐트 생활에 익숙하지않은 나를 여러모로 도와주신 그분은

저녁이면 조용히 기타치고 노래하는 나를 보고 따라 하시며

술잔 기울이는 것을 특히 좋아하셨다

그분은 털이 수북하고 순한 골든리트리버 성견을 데리고 있었는데

워낙 활발한 녀석이라 이리 뛰고 저리 달리는 덩치 큰 두메(이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카메라를 들고 외출하실 때는

텐트 안이나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에 두메를 묶어 놓으셨다.

난 두메의 머리에서 목덜미로 우아하게 처진 갈기 쓰다듬기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우리 셋은 정이 들어갔다.

 

7월이 되어 해수욕장 개장 철이 다가오니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후덥지근하고 번잡함이 싫어 텐트 철수를 결심할 때 즈음

그 분도 강원도 깊은 계곡으로 피서 했다가

서늘한 바람이 불 때 단풍을 따라 태백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실 계획을 잡으셨다.

그 때 그렇게 이별을 했지만 수시로 찍으신 새로운 풍경들을 카톡으로 보내주셨는데

언제부터 인지 두메가 사진 속에 보이지 않길래 물었더니

미국으로 입양 보내셨다 한다.

 

수 년 전 부인과 사별하시고

캠핑카를 사서 두메를 데리고 도심의 아파트에서 벗어나실 때부터

그렇게 오롯이 남겨진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전국의 구석진 곳을 유랑하며 살았을 터인데

어째서 입양을 보내셔야만 했는지 나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작년 이 맘 때인?

미국 어딘지 모를 넓은 농장 초원에서 뛰놀고 있는

두메의 사진 몇 장을 내게 보여주시면서

녀석은 잘 살고 있습니다.”

라고 하시는 말씀이 왠지 더욱 쓸쓸해 보였다.

 

오늘 우연히 사진첩을 뒤지다 영상 속에 두메가 짖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지난날 변산의 추억이 떠올랐다.

짖는 소리라도 들으시라고 영상 보내드려야겠다.

 

   2023 9

 

 

 

추천12

댓글목록

청심 작성일

좋은 글 보고갑니다.

좋아요 0
야한달 작성일

화면에 안보이시니 동영상은
작가님이 찍으셨나바요
세분이 쇠주 각 일병 맥주파 한분이
캔맥 두개 마신거면?
주정뱅이 취급 당한 젝아 보기에
술꾼들은 아니시네요ㅎ

좋아요 0
기자 작성일

아마도 모임 후배님들이 찾아 온 날인 듯합니다.
영상 말미 잡다한 얘기들 하는 친구들 서너명 더 있었고요
저는 안마셨지만 이미 빈 병은 짝으로 치워 놨을 겁니다 ^^

좋아요 0
체리 작성일

코비드19
하늘길도 막힌 오지섬에 갇혀서
코로나 공포로 불안할 때
변산 바닷가에서는 
옛사랑같은  저런 시절이 있었네요..한량 얼라리뉨 ㅎ

(미쿡에 간 두메가 잘 있다는데도 왜 짠한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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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작성일

여기 오니 옛사랑 아니.. 옛사람 다 만나네 ^^

좋아요 0
가을비우산속 작성일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기자 작성일

그 건 아니구요... ^^;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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