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뭐든 처음은 두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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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이는사랑 댓글 4건 조회 1,007회 작성일 23-07-04 23:55본문
울엄마 간병 얘긴데
기침을 2주이상 하셔서 내과에 다니며 아무리 감기약을 복용 해도 낫질않아
준종합, 종합병원 거쳐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당시 분당 살 때였는데
내가 분당 서울대병원에 모시고 가니
일주일 동안 입원해서 다양한 검사를 해보자고 하더라.
기침이 주증상이니까 폐관련 다양한 검사를 일주일내내 했고
결과는 폐암으로 나왔다.
믜사말로는 말기여서 수술을 하면 폐를 거의 잘라내야 하고 수술해도 조금 생명을 연장할 뿐이고
수술을 안 하면 시한부 6개월이라고 했다.
당시 엄마 78세였다.
엄마한테 수술 하자고 하니까 거부를 했고
형제자매들 의견도 수술 보다는 임종간호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일단 퇴원하고 하고싶은대로 인생을 정리하며 유의미한 시간을 갖길 바라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서서히 진통이 찾아오던 중에 대퇴골 골절까지 와서
지역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렵다고 하여
엠브란스 불러 서울대병원에 입원 해서 골절 수술을 받으면서 암 치료까지 같이 하게 됐는데
하필이면 그때가 폭설이 내리는 한 겨울이라 나외엔 아무도 병원에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혼자 간병을 하게 됐는데...
나도 간병은 처음이라 많이 무섭고 두려웠었다.
매일 인터넷을 두드리며 간병을 했는데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 다니고 등 마사지 해주고 다리 주물러 드리고
음식 먹여 드리고 그러면서 간병을 하는데
2주일이 지나니까 의사가 부르더니 더이상 해줄 게 없다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나혼자 엄마를 내 차에 태우고 호스피스병원으로 가면서
밥도 사먹고 세차도 하고....그게 엄마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진통이 점점 더 심해져서
처음엔 마약성 알약으로
나중엔 아프다고만 하면 마약성 주사를 수시로 놨다.
그렇게 두 달은 또렷한 정신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나중엔 약에 취해 정신을 놓으시더니 3개월만에 돌아 가셨다.
대화가 안 되고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였을 때
네이버를 뒤지니 자세변경을 하지말고 그대로 지켜보기만 하래서 그리 했더니
담날보니 천골 쪽에 거뭇해지면서 욕창의 기미가 생기더라. 그리고 그 다음날인가 새벽에 돌아가셨다.
욕창 생길려고 했다니까 당시 쉼방 알코올리즘인 쪼다가 어찌나 갈구던지 많이 싸웠던 기억이 난다.
나도 병간호는 처음이어서 맨날 네이버 뒤지며 최선의 간호를 하려고 노력 했으나
지나고보니 잘한건가 잘못한건가 지금도 모르겠다.
요는 기침이 오래가면
무조건 엠알아이나 펫시티니 기관지경니니 이런 검사 해봐야 한다.
아님 잠복결핵검사도 해야 하고
65세 이상 폐암 1위잖아. 나도 예외는 아니다.ㅠㅠ
댓글목록
7
수고했다
글도 닌 엄마 사랑 받았잖
낸
그런거 읎다이
내가 걸 알았을 때
깨달음 오고부터 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열중했다
그러나 혈연관계 그닥 쉽지 않았다
너도 잘 알듯이
피터지는 칼부림 전쟁 따로 없다
너가 항상 난티 엄만데 왜 그러냐 강요 하는데
그거 내겐 이중상처다
태음인이 간 기능이 강하고 위가 튼튼해 소화력이 좋지만 폐가 약하지유~
좋아요 0쪼다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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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면 보호자가 곁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나도 늙으면 내 자식들이 내가 갈 때까지 지켜줄까 의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