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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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산 댓글 2건 조회 270회 작성일 24-11-19 13:15본문
=압바스 카이로스타미
웬수 덩어리 집이 팔렸다.
몇 년 전 중개소에 내놓았다.
가격을 너무 후려쳐서 거두었다.
차라리ᆢ
은퇴하면 사무실로 쓸까 궁리했다.
소유효과로 그 가격에는 도저히
팔 수 없었다.
어머니가 대략 35년 전에 산 주택이다.
복층 단독주택 지역이라 조용하다.
주로 토박이들과 은퇴한 포스코, 군인,
군무원들이 산다.
거래가 더물다보니 주변 시세에 깎아
주었다. 네고 밀당은 없고 몇 마디에
오케이 했다.
렌지류와 김치냉장고에 에어컨은 그냥
주었다. 이것까지 얼마한다고 ᆢ
좋은 이웃이 사는데.
강남 아파트 화장실 가격 수준이다!
정서적으로 애환이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가지고 다닐수도 없다.
내 과거 기억의 자투리 하나가 지워지는
느낌이다.
단기적으로 전국을 여행이나 등산으로
돌아다녔지만 ᆢ내 삶의 가장 긴 흔적이
남은 집이다. 서울 생활은 빼고.
안동에서 태어나 부산과 시골 깡촌에서
자랐다. 읍내로 나와 장만한 집이다.
외가 유산으로 ᆢ
외갓댁이 바로 옆이다.
울집은 아버지 사업하다 망했지만,
외갓댁은 그 동네 지주였다.
속된 말로 외갓집 땅 안 밟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 ᆢ가세는 많이 기울었지만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
촌동네 명문고에 입학했지만 고등학교
입학금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숙모에게 부탁했었다. 당시 삼촌은 크게
수산업을 하셨다. 일본에 수출도 하는 ᆢ
돈이 없다는 말 들었다!
사촌 동생들은 공부도 못했는데,
그 당시에 서울 집을 사서 가정부 고용하여
유학시키면서ㅡ;ㅡ
어머니가 외할머니께 부탁하여 도움을
받았다. 학교도 외할머니 댁에서 다녔다.
당시 울집은 아버지 사업실패로 ᆢ
얼마 되지도 가구 등에 노란딱지(집달리)가
붙었다.
내가 할 일은 정신차리고 공부였다
촌놈이 출세하는 방법은 공부고 ᆢ
결국 나는 개천에서 이무기도 되지 못했다.
다만, 한 시대를 살면서 분노할 때 같이
분노하고 알량한 자존감 하나로 버티고 산다.
그 숨소리도 그 집에 스며있다.
내가 잡혀간 것도 그 집이다.
어머니는 우셨다.
큰 돈도 아니고 동생들이 내 형편보다
여유롭지만 1/3로 나눌거다.
단지 장남이란 명목으로 받았어니까.
동생들은 됬다는데 ᆢ자취가 남은 그
무엇을 나누고 싶었다.
깊이를 알수 없는 과거를 공유한 작은
기억이라도,
아 ᆢ우리가 여기에 살았지.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시다.
집을 팔면서 기억 하나를 지우고 있다.
흔적도 ᆢ
이제 사는 곳이 내 집이다.
ᆢ경주 수목원(경북 산림환경연구원) 근처
땅을 알아보고 있다. 마지막 여정의 살 집을
지으려고 ᆢ
댓글목록
나이들면 정리하고 심플하게 살다가 아프면 요양원 들어가서 남은 생 하직 하는 게 보편적인 인생 코스야. 잘 팔았다. 시원섭섭하겠지만.
나이들어 현금 보유 하면서 아프면 병원 다니고 유유자적하다가 가길 바라묘.
산님 반갑습니다
1세대 어른들은 고향을 떠나기가 쉽진 안을 겁니다
나이 들어서는 누구나 수구초심도 있고...
[경주] 중학교때 수학여행 가보고 아직 한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이제 여권이라도 만져보고 가는것이(?)
나의 마지막 남은 소원입니다 ㅋㅋ
에쓰티아이 깨구락지 시키고
한국까쓰공사 섭섭할까봐 쬐끔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상한가 쳤는데도 까쓰공사만 기냥 가지구 있을려구 합니다
왜? 결정적으로 아직 본전(?)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ㅋㅋ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