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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불매운동에 대하여글쓴이: 과학사랑 (2019-08-04 15:08)
최근 불매운동을 보며 연구실에서도 많은 일본 제품이 있다는 게 착찹하게 생각되네요. 노노재팬 처럼 연구용 시약이나 장비에 대해서도 대체품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있으면 좋을것 같은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세요?
댓글: skepsci (2019-08-04 16:26)
스스로 실험실 셋업을 해보셨는지요? 스펙상 같다고 같은게 아닙니다. 피펫팁 하나, 필터 하나 스펙상으로 같은걸 실제로 테스트 해보면 품질이 천차만별입니다. 표면장력, recovery, 견고함, 불순물 수준... 좋다 나쁘다를 떠나 validation을 완전히 다 다시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장비는 더 심각하죠. 자꾸 고장나고 A/S도 시원찮으면 답이 없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고소해서 장비 업체들에게 책임을 물릴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냉정하게 판단하세요. 일본은 우리나라 산업의 핵심을 때리는데 우리는 기껏해야 재료 하나 과자 하나 안 먹는다고 일본에게 대항하고 있다고 뿌듯해 해요. 냉정하게 그게 정말로 지금 언론들이 떠드는 것처럼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매우 쉽게 보는데 일본은 선진국이고 강대국이에요.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강대국일만큼. 특히 든든한 기초가 기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승산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건 감정적이고 일시적인 대응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본 냉정한 판단입니다. 이 무역분쟁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우리가 기초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과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산 시약을 안 쓰는 것보다 중요한건 우리나라 과학기술 업체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거에요. 여기에 불매운동이 도움이 될까요? 아니죠.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초를 중요시 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에게 사업은 부업이고 본업은 정치인에게 로비해서 편법승계 작업을 하거나 노동권을 억압하고 하청업체를 막 다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일본산 제품을 몰아내면 그 다음에 남는건 우리나라 기업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음껏 등쳐먹는 환경입니다. 사람들이 '유니클로'를 몰아내면서 유니클로가 원래 가성비가 나빴느니 뭐니 하는데 그 가격대에서 품질이 그 정도라도 되는 우리나라 의류 업체 하나만 말해주세요. 곧 겨울이 올텐데 니트 제품들 재질 한 번 비교해 봅시다.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기초를 중시하지 않는 환경을 만든 정치인들과 경제인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100명에게 1억씩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돈을 1인에게 몰아주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고, 녹색성장,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 등의 알맹이 없는 쓰레기 키워드만 나열하고 이에 영합하는 사람들에게 돈과 자리를 나누어주는 바로 그 사람들을 심판하는 거에요. 모든 책임은 그들이 져야지, 왜? 이 모든 것이 더 품질 좋은 상품들을 선택한 국민들의 잘못인 것처럼 몰아갑니까?
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 등의 결과를 뻔히 아시지 않습니까? 국민이 나서서 국가를 살리면, 국가를 그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던 사람들이 그 결과물을 먹어 치우면서 배를 두드립니다. 이순신 장군이 우리나라를 구한 다음에 어떻게 되었죠?
일본이 어쩌고 저쩌고 하기 전에 우리나라를 바로 잡읍시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나라 전체에 어떤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을 때 무작정 시행하는게 바로 후진국의 특징입니다. 플라스틱이 이슈가 되면 그냥 내일부터 플라스틱 컵을 쓰지 말라는게 우리나라 같은 후진국의 특징이에요. 거기에다가 플라스틱의 정의가 불분명해서 사후에 이를 clarify해야 하는 허접함은 덤이었죠. 정책은 그렇게 시행하는게 아닙니다. 플라스틱이 문제가 되면 플라스틱에 환경부담금 등의 명목으로 세금을 상당히 크게 물리면 됩니다. 그러면 사정상 플라스틱을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곳에서는 그걸 쓰고, 여건이 되는 업체들에서는 종이컵이나 다회용 컵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경부담금을 서서히 높여감으로써 smooth transition을 유도할 수 있죠. 지금은 이런 정책적 세심함이 없으니 종이컵 쓰레기가 오히려 쌓여가고, 슬쩍슬쩍 일회용 컵을 카페에서 쓰면서 안 걸리기만을 노심초사 바라죠. 사실상 국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아주 악질적인 정책 방식입니다.
일본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에요. 정 일본 제품 대체가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이를 대체할만한 제품을 생산하거나 공급처를 찾고,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 제품을 쓰는 것이 조금 더, 조금 더 불리하도록 정책을 만들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 개인의 감정적 선택에 불매를 맡긴다면 이를 따르는 사람은 불리해지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유리해지는 환경이 됩니다. 장비 하나 바꾸었다가 고장나서 연구비 수천 수억을 날리면 누가 보상해줄 겁니까? 정부가? 글쓴이가? '애국자'가 책임지고 몰락하게 되겠죠.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십 번 확인할 수 있는 교훈인데 안타깝게도 국민들은 아직도 모르네요.
모든 책임은 정책 입안자에게 물려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습니다. 일본 불매, 국산품 애용도 정책적으로 결정을 하면 '애국자'만 손해를 보는 상황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무역적 분쟁이나, 저품질의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과학기술 연구가 더디어지는 문제는 그 정책을 입안한 사람이 책임져야겠죠. 그러기 위해서 그 정책의 효용과 문제점을 심각하게 저울질한 후 최대한 합리적으로 결정을 하려 노력하겠죠. 이게 올바른 국가 운영방식입니다.
일본은 이 방향을 하루 아침에 결정한 것 같습니까? 이미 우리나라가 입을 타격, 그리고 가능한 대응을 이미 견적 다 내놓고 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일본 제품 안 쓸래!?" 참 편리하고 단순한 해법이죠? 그러면 지금까지 일본 제품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의 생계는 글쓴이가, 일본 불매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책임질건가요? 아, 원래부터 일본 제품으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은 매국노들이니까 우리가 책임질 필요없다? 세상 참 편히 사는 사람의 생각이죠. 글쓴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은 얘기를 하나 봅시다. 모든 문제는 이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한 정책 입안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리는 환경이 되어야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합니다. 이번 WTO 분쟁에서 1차에서는 대차게 깨졌다가 2차에서 '드림팀'이 구성되어 반격에 성공한 것 아시죠? 우리나라는 워낙 전문가가 중시받지 못하는 환경이다보니 초기 대응이 어설플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문에 비판이 심해지자 전문가들이 동원되었고 그래서 이긴겁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나라는 그런 나라입니다.
여담으로 기성품이 아니라 장비 제작 입찰계약 후 나오는 장비의 퀄리티를 꼭 한 번 경험해보시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주변에 보면 장비를 허접하게 대충 만들어놓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고 액션이 취해질 것 같으면 파산신청하고 다시 회사 설립을 하여 이전 장비는 자신에게 책임없다고 하는 경우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런 우리나라 과학기술 환경을 꼭 경험해보시고 일본 불매운동, 국산품 장려운동을 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참, 부하 직원이 논문 조작했다고 자살하는 일본과, 논문 조작 후에도 당당히 과기혁신본부장 후보로 올라설 수 있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계도 꼭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