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로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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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달빛사냥꾼 댓글 8건 조회 2,464회 작성일 19-05-24 16:19본문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신촌은
해방구였다. 직선제가 이루어지고
퇴폐적인 일본 영화 무삭제 판도 들어왔다.
우리 주무대는 신촌역(기차역)앞 2층, 테이블
서너 개가 있는 카페가 만나는 주 장소.
바로 홍대 입구라는 곳 ᆢ직장도 다들 다니고
여자 친구들은 미술학원에 도자기를 꾸버팔고 ᆢ
연예기자도 있어서 화제는 토요일이면 시끌벅쩍.
술 꽐라되면 신호등에서 ᆢ각자 여자 친구들 등에
업고 건너편까지 먼저가면 이긴다.(물론 파란불이 신호)
당시 이런 진상짓을 하고 놀았다.
이때만 하더라도 이대쪽에는 드레스 가게가 많았고,
지하철에서 나오면 신촌 문고에 건너편 현대백화점은
터파기나 할 정도. 가다가 우측으로 들어가면
삼치 구이집도 자주 들렀다(여긴 소주가 아니라 꼭
청하를 먹어야 한다)
연세대 굴다리 가기 전 좌측 허름한 콩나물
라면집은 지금도 생각난다.
돌아가신 내사랑 내곁에의 김현식도 신촌파다.
술 꽐라되기가 일수 ᆢ
당시는 신촌파, 종3파,(피카디리나 단성사) 명동파로
나누었다. 아마 이때쯤 압구정동 오렌지족들이
막 대두되는 시기인걸로 기억한다.
요즘에야 청담동이지 그때는 가나화랑 등 ᆢ
그냥단독주택들이 있는 동네 정도로.
각 그랜저와 삐삐도 그즈음 나오고 ᆢ88도로는
토요일이면 그냥 노상주차장이 된 시절.
회식하면 마포 돼지갈비나 돼지고기 특수부위가
유행이었던가. 아 ᆢ일산에 아파트도 이 시점이
대략 맞을 거다.
이젠 기자 친구의 제법 유명한 배우 남편도 죽었고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기억만 남았다.
전화도 고작 서너 명만 한다.
영화 화양연화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틈새로
본 것처럼 ᆢ지나간 희미한 기억일 뿐이다.
그들도 그렇겠지만 ᆢ
쎄라비!
# 경춘선 지나가는 기차가 보이는 남양주 "봉주르"는
2005년 쯤 간게 마지막이다. 이젠 없어졌다하니
갈 일도 없어졌다.
댓글목록
포스트맨이 부릅니다
널 보면 눈물이 터질까봐.....
그곳을 못가 내가 어떻게 가니 ...
그사람이 걸었던 길바닥에
주저앉아보고싶습니다
아마도 다리풀려 ㅋㅋ
김현식이 부릅니다
이별의 종착역 ㅜ
슬픕니다
두 번 벨을 누르겠습니다(포스트맨은 ᆢ
영화제목. 상상력이 이것 밖에 안되어서리)
김현식은 이때부터 알코올 조절을 못함.
여자 친구 중 락팬드 연주자와 사궐 당시라
술도 한 잔 한 적이 있었더랬죠.
종착역 좋죠.
유튜브에서 찾아 듣겠습니다^
신촌로터리 주변 지금 현백 건너편쪽에 이층의 라이브 카페.
풋풋햇던 노사연씨와 조 덕배 횽아 가 와서 라이브 하던곳
그리고 로터리에서 서강대 쪽 에 지하에 나이트 클럽 ㅎㅎㅎ
84년즈음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술 치러 가고
주로 반대편 화양동 쪽에서 놀았음..
운동끝나면~~~ 술로 샤워를 하고~~
선배들 눈피해.. 도망 다니고~~
신촌파는 대다수 촌놈들이 좀 있었죠.
지방에서 유학온ㅋ!
ᆢ당시만해도 겁이 없는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생각만 많아진 나이가 되었습니다^
종로,명동파
데이트를 주로 이짝에서 ㅎㅎ
명동교자(칼국수) 좀 드셨겠네요^
당시 명동 상업은행인가 지나서
명동 사채시장 사무실에 어음 깡하러
자주 다녔습니다.
남양주 봉주르? 없어졌던데요
몇십년간 불법으로 운영을했던거라던데..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퇴근 하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