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목욕에 대한 추억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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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이는사랑 댓글 7건 조회 158회 작성일 24-12-03 19:12본문
국민핵교 때는 목욕탕도 없는 깡시골에 살았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가마솥에 불을 피우고
큰 고무다라이에 뜨거운 물을 받아 한 명씩 들어가라 해서 때를 밀어줬었다.
그런데 난 언니가 먼저 씻고 나온 더러운 물에 몸을 담그기가 정말 싫어서 새 물을 받아 달라고 했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서버 번 맞고 강제로 고무다라이에 들어가야만 했다.
때가 많다고 벅벅 미니 아파서 아프다고 했더니 또 등짝을 때리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울면서 때를 밀었다.
다 씻고 맑은 물 한 바가지를 끼얹고 나와
몸을 말리고 빨간 내복을 입고나서야 개운함의 극치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모두 씻고 난 고무다라이 물은 다시 빨래를 빨고서야 버린 울엄마는 아주 알뜰하셨다.
화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행복하게 웃던 그 시절이 늙으니 문득문득 생각이 나넹.
당시엔 집집마다 애들이 웬만해선 5_7명이었는데
국가에서 피임하라고 콘돔을 살포 했었는데 그런 날은 친구들이 동네방네
하얀 풍선을 불어 들고나와서는 달리기도 하고 놀던 생각이 나는데 풍선이 어찌나 찔긴지 잘 터지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울 친구들집 보통은 애들이 6명 전훈데
한 친구의 엄마는 애를 14명 낳은 집도 있었다.
낳는대로 그냥 낳다보니 그리 된 듯.
세상이 많이 변해서 이젠 애도 안 낳는 세상이니 격세지감...우리나라는 100년 안에 사라질 것인지...그 전에 죽으므로 앞날은 알 수가 없네.
댓글목록
아휴 애를 6명씩 낳으믄
진짜 공부는 뒷전 일을 더 시켰겄네요
어느새 댄민국이 발전하여
세상이 변했네요 ㅠ
때론 옛것이 그립요
애가 6명인데도 집안일은 안 시켰어요.
과수원을 해서 복숭아 씌울 봉지 만드는 알바는 시켰는데 그것도 하기 싫어서 조금 하다가 만 기억요.
지금 생각하면 일을 좀 도와 드릴걸...힘들었을 엄마 생각하니 맘이 아프구만유.
다만, 내가 좋아서 한 일은 많네요. 시키지않아도.
엄마의 등짝스매싱이 그립다.ㅎ
좋아요 0특히 비오는 날엔 언니들이 우산들고 먼저 학교 가고나면 우산이 없어서 비료푸대 쓰고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늦잠자니 맨날 비오면 비료푸대 아님 신문지 머리에 이고 다님. 하늘색 나무 우산이라도 내 차지되는 날은 아주 뿌듯했더라는.ㅎ
좋아요 0대나무살 퍼렁 우산 저도 기억에 있어요 ㅎㅎ
좋아요 0바람불면 잘 찢어졌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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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 낳은 친구네는 게 중 딸이 2명이어서 아주 귀했다.
난 울집 6명도 많아서 가족 많은 거 너무 싫었었다.
그래서 딩크족을 선호 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