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나도 철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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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부모님이 경제교육은 안 시키고 그냥 원하는대로 다 해줘서
지금 생각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살긴 했음.
그래도 졸업할 즈음 친구들이 취업 걱정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들 내고 그러니 덩달아
나도 취업 하려고 졸업시즌에 몇 군데 이력서를 내고 면접 보러 다니고 해서 세 번 만에 취업이 돼서
직딩 하다가 얼떨결에 시집을 가서 폭망한 인생이 펼쳐지나니
여자의 일생이 뒤웅박 팔자라고 몇 번이고 되돌리고 싶었지만 자식 생각 하나니 희생하며 산 것 같은데... .
참 인생은 반추하건데...
뭐하나 쉬운 게 없었구나 하넹.
요즘 폭싹속았수다가 그리 잼나던디 그 짝 인생이 난감?ㅎ
결혼 전에는 직장이 서울이어서 서울 살면서 친구들 만나 여행도 다니고
직딩들과 미사리로 단합대회 가서 삼겹살도 궈 먹고 아주 재미나게 살았었는데
결혼 후 지난한 인생이 펼쳐지더니 이젠 자식 걱정하다가 아프다가 인생 종칠 것 같으.
참 인생은 고통인 것이야아~~~ㅠㅠ
난 취업 하고 나서 울 부모님한테 땡전 한 푼 안 받고 살았었는데
얼추 나이가 드니 부모한테 손 안 벌리게 되고 용돈만 챙겨 드리게 되던데 울 아덜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당.ㅠ
오늘 옛날 앨범을 보나니
당시엔 종이로 받던 월급 명세서와 미사리 야유회 가서 삼겹살 구워 먹고 잼나게 게임하던 생각이나넹.
그 사진 보니까 참 지난했던 직딩 모습도 떠올라 그래도 나, 열심히 살았수다래.ㅎㅎ
댓글목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픈데 그래도 부모님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도 많았겠지 나를 위로하며...
난 당시 월급을 타면 60만대니70만대니 타고 보너스 나오면 90만 원도 타고 했었는데 평상시엔 부모님께 월급날 20만 원씩 용돈을 부쳐 드리고 보너스 받으면 40만 씩 드렸는데 시집가니 일을 안 하니 용돈 안 부치다가 나중에 일 다시 다니고부터 부모님 두 분 돌아가실 때까지 매월 30만 씩 부쳐 드리고 때에 따라 또 따로 드리고...틈틈이 여행 같이 다니고...애들 키우며 참 바쁘게 살았는데 그래도 항상 더 잘해드릴걸 미련이 남넹.

91년쯤인가 미사리 야유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시절로 리셋된다면 결혼은 안 하고 내 친구처럼 지금까지 그 직장에서 정년퇴직 하고 홀로 즐기며 부모님께 효도하며 살았을 것 같다.ㅋ
자식을 둘이나 낳아보니 애물단지여....죽을 때까지.

모든 건 지나고 나서야 진리가 보이나니 후회가 남는데 그래도 지금 늙었으니 그동안의 삶이 지혜가 생겨 앞으론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지하네.
좋아요 1
폭삭 속았수다~~~
직역 ㅡ(매우 수고하셨습니다)


ㅎㅎ 인생이 참 다이나믹하게 고생 많았던 듯하네여.
팔자가 맘에 안 드네여.ㅋㅋ

모든 건 지나고 나서야 진리가 보이나니 후회가 남는데 그래도 지금 늙었으니 그동안의 삶이 지혜가 생겨 앞으론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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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쯤인가 미사리 야유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시절로 리셋된다면 결혼은 안 하고 내 친구처럼 지금까지 그 직장에서 정년퇴직 하고 홀로 즐기며 부모님께 효도하며 살았을 것 같다.ㅋ
자식을 둘이나 낳아보니 애물단지여....죽을 때까지.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픈데 그래도 부모님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도 많았겠지 나를 위로하며...
난 당시 월급을 타면 60만대니70만대니 타고 보너스 나오면 90만 원도 타고 했었는데 평상시엔 부모님께 월급날 20만 원씩 용돈을 부쳐 드리고 보너스 받으면 40만 씩 드렸는데 시집가니 일을 안 하니 용돈 안 부치다가 나중에 일 다시 다니고부터 부모님 두 분 돌아가실 때까지 매월 30만 씩 부쳐 드리고 때에 따라 또 따로 드리고...틈틈이 여행 같이 다니고...애들 키우며 참 바쁘게 살았는데 그래도 항상 더 잘해드릴걸 미련이 남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