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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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낭만오빠 댓글 0건 조회 1,162회 작성일 23-03-17 07:29본문
일송정
해란강
윤동주 시인 모교 용정시 대성중학교
도문시(투먼시) 두만강......강 건너편이 북한땅이다.
백두산
선구자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
(1절)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2절)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3절)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마음 길이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선구자의 원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 였고 유랑민의 서러움을 절절하게 표현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해방 후 제목이 '선구자'로 바뀌었고 가사가 전에 없던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라는 내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1절은 윤해영 작사이고 2,3절은 후에 작곡가 조두남이 작사했다.
가사에 나오는 지명 때문에 만주 특히 북간도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구자의 작사가인 윤해영과 작곡가 조두남 모두 친일 행적 때문에 선구자가 독립군이 아니라 만주국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견해도 있다. 가사에 나오는 일송정과 해란강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룽징시)에 있는 지명이다.
일송정은 용정시 비암산(琵岩山) 정상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 이 산 정상에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모양이 정자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일송정이다. 일제강점기에 용정시는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곳이었으며, 산 정상에 독야청청한 모습으로 우뚝 선 소나무가 독립 의식을 고취하던 상징이었다고 한다. 1938년 일제(日帝)는 이 소나무를 고사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91년 용정시 당국은 한국의 각계 인사들의 후원으로 옛 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어 복원했으며, 그 자리에 현재의 정자를 세웠다.
해란강은 두만강의 지류로 용정시를 가로질러 흘러서 두만강으로 이어진다.
2009년에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와 용정시, 도문시 그리고 백두산을 다녀왔다.
연길시는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인데 현재는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많이 가서 조선족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는데 특히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으로 많이 가버려서 조선족 남자들이 결혼을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용정시에는 시인 윤동주가 다닌 대성중학교가 있고 현재는 역사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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